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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4일
2008년 10월 12일
언제부터였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사는 공간 안에 동물이 같이 숨을 쉬며 삶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곳에 어디 동물이?’라는 위압적인 부모님의 한마디에 그냥 TV나 책 등을 통해 구경만하고 대리만족으로 그 끝을 맺고 있었지만, 홀로 살다보니 다시금 그 욕망이 꾸물꾸물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혼자 살기에 더욱 더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는 커져간다. 그래서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있다. 단순히 ‘기르고 싶다’라는 동경과 자기충족만으로 한 생명을 곁에 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하고도 충분히 욕을 한 트럭만큼 먹을 만한 이기적인 생각이다. 똑같은 생명이기에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나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며 나에게, 그에게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어 잘 모르긴 하지만 그들도 똑같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말도 못하는 것들이 사람보다 더 괴로우면 괴로웠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반려동물을 데려다 키워 볼까하며 두 마리는 되어야겠지...?라고 생각하다보니, 일이 커진다... 학생이라 돈도 없지. 여유도 없지. 게다가 게을러 내방 청소도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한 놈이 그 녀석들 관리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보나마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무슨 구제, 구출 방송에 나오는 참혹한 현장의 일부가 될 것이란 건 안 봐도 비디오인 사실이다. 진짜. 역시나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로망은 로망이지만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좋아하게 된 이유를 잘 생각해보니 주변에 고양이랑 관련된 것이 참 많다. 좋아하는 작가들 곁에도 그들이 있고, 뮤지션 옆에도 그들이 있고,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 옆에도 항상 그들이 있다. 자연스럽게 나도 물들어 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분명 어렸을 때는 관심도 없었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인데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귀여움에 손에 들었던 불쌍한 병아리가 ‘잠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주인이 마당에서 사라진 사이, 애타게 주인의 구원을 기다리다 도둑고양이에 의해 황천으로 갔었다. 어르신들의 ‘요물’이라는 입버릇과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는지 나의 머릿속엔 한참 동안, 아주 한참 동안 나쁜 색깔로 그들의 이미지는 덮여 있었다. 그리고 집 뒤쪽 덩그러니 놓여있던 낡은 소파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도둑고양이 새끼들을 박스에 담아 어디 멀리 버리고 오셨던 할머니의 모습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고양이의 어떤 부분이 참 매력적이냐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하나가 명확해졌다. 그 가지런히 모인 앞발. 최고다. 그 보송보송해 보이는 그 털 뭉치. 만지면 싫어하고 하악거린다고도 하지만 로망 중에 로망. 길냥이들을 보아도 만져보고 싶은 그 충동은 억제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까칠하고 도도한 느낌도 참 좋다. 애교 많고 부산스럽진 않겠지만 간간히 날려주는 그 애처로운, 감질나는 그들의 모습. 밀고 당기기의 본좌라고나 할까나. 호기심 많은 그들의 행동과 조용함. 적절히 경계할 줄 아는 미덕과 앞발을 잘 사용하는 그 매력까지. 글을 쓰다 보니 왜 썼을까? 하는 생각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이건 뭐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얘기도 아니고 기르면 안 된다는 결심도 아니고 그냥 주저리 헛소리 잡소리만 끄적이고 있으니. 그래도 언젠가 삶의 여유가 된다면 집안 여기저기를 고상한 발놀림으로 유람하며 주인을 자기 정원에 박혀 있는 돌덩어리같이 여기는 고양이 한 마리는 곁에 두고 싶다. 그래도 자기가 배고프면 와서 부비부비~해대겠지. 고양이랑 한 시간도 보내보지 못한 사람의 동경과 편견이란 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내 글을 보며 내가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는 궁금한 점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난 고양이가 좋다’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내 지금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2008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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